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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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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5·18민주화운동의 부활

진상규명 운동과 책임자 처벌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27일 신군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지만 광주 시민과 민주화를 갈망했던 국민들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5‧18 진상규명 운동’을 전개했다. 신군부의 폭압에도 불구하고 유족, 구속자, 부상자들이 5‧18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1980년대 중반, 광주학살의 진상이 외부에 조금씩 알려졌다. 그때부터 전국의 모든 집회는 ‘광주항쟁 진상규명, 살인자 처벌’ 구호로 시작되었다. 김의기,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박승희 등 이 과정에서 수없이 죽어간 열사들은 5․18을 다시 세우는 역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5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촉발된 1987년 6월 시민항쟁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은1988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가 열렸다. 진실의 일부분이 공중파 TV를 통해 안방에까지 가감 없이 전달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면서 그해 5월부터 전국적으로 5‧18 진상규명 운동이 다시 거세게 시작됐다.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공소시효 만료(1995년 8월 15일)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은1994년 3월 ‘책임자 고소 고발 사업, 광주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등을 목적으로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과 광주항쟁 정신 계승 국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이 앞장서서 1994년 7월 294명의 연서로 전두환, 노태우 등 35명을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 및 고발했다. 정치적 부담을 느낀 검찰은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5‧18 관련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외면했다. 그러자 전국의 시민 사회단체와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책임자 처벌 운동이 더욱 격화되었고, 마침내 1995년 10월 26일 ‘5‧18 학살자 처벌 특별법 제정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집회와 시위, 농성 등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면서 신군부의 부정 비리 청산도 함께 주장했다.

  5‧18민주화운동은마침내 그해 12월 19일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 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국민들의 사법투쟁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핵심세력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인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35명이 5‧18 내란 혐의로 기소되었다. 치열한 공방 끝에 1997년 4월 18일 대법원은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한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며 신군부 세력을 처벌했다. 전두환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 노태우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 황영시 징역 8년, 정호용 징역 7년 등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 주동자 15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세계 역사에서 전직 대통령 2명이 한꺼번에 감옥에 간 것은 전례가 없었다. 이들은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모두 석방됐다. 당시 집권을 눈앞에 둔 김대중 후보가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를 이유로 5‧18단체와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면을 강력히 주장했던 결과였다.

피해 보상과 기념사업

  5‧18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위한 정부의 공식 대책은 1988년 4월 1일부터 본격화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만들어진 ‘민주 화합 추진위원회’의 의견을 바탕으로 ‘광주사태 치유 방안’을 만들었다. 1990년 7월 5‧18관련자의 피해 배상과 보상의 근거가 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었다.

  2017년 5월 현재 제6차 보상까지 이루어졌는데, 지금까지 광주시에 신고된 5‧18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는 사망 155명, 상이 후 사망 110명, 행방불명 81명, 상이자 3,378명, 기타 910명 등 총 4,634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직접 신체에 상흔을 입은 사람들에 국한된 것일 뿐이다. 5‧18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발생한 직간접적 피해와 파생적 피해는 가늠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 관련자의 명예 회복과 기념사업도 추진되었다. 항쟁에 참여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보상과 더불어 ‘5‧18민주유공자’로 공식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생사를 넘나들던 고통을 기억하며, 의의를 기념하는 장소와 공간이 조성되었다. 1997년 옛 망월묘역 옆에 국립 5‧18 민주묘지가 새로 조성되었다.

  아울러 1999년 4월에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연행되어 구금 및 재판을 받았던 옛 상무대 영창과 법정 그리고 헌병대 막사는 원래 위치해 있던 곳 인근으로 옮겨져서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계엄군의 지휘 본부가 설치되어 있던 옛 상무대의 일부는 5‧18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항쟁정신의 계승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시민군들의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과 그 일대는 국가의 약속에 따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조성되었고, 그 내부는 5‧18을 기념하는 특별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5‧18 당시 격전지를 중심으로 광주·전남에 사적지 안내 표지석과 안내판 등이 설치되었다.

5‧18 자료의 세계기록유산등재

  5‧18민주화운동은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항거로 전 세계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다. 미흡하지만 학살 책임자를 국민의 힘으로 법정에서 처벌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과거사 청산 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특히 1980년 5월 이후 전개된 민주화운동과 인권 및 평화 운동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야만적인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계엄당국은 불순분자, 폭도, 난동, 폭동으로 매도했지만 비인간적인 폭력에 결연히 맞섰다. 도시가 완벽하게 포위된 채 고립되고, 진실을 외면하는 대중 매체, 군 정보요원들의 교란작전이 난무하였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음식을, 부상자에게는 피를 나누어 주었으며, 일손이 필요할 때는 누구든 달려가 도왔다. 항쟁지도부가 수습 방법으로 고심할 때 시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

  계엄군 퇴각 이후 6일 동안 치안의 공백 상태에서도 시민들은 스스로 완벽하게 질서를 유지했다. 그토록 많은 총기류가 시민들 수중에 있었지만, 사고나 불상사는 한 건도 알려진 바 없다. 금융기관, 금은방 등 평소 범죄자들이 노릴만한 곳에서도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공격한 장소는 세무서와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 매체들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오월 광주는 계엄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 마음속에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민주 수호에 대한 긍지만은 꺾을 수 없었다.

  1980년 이후 해마다 5월이 되면 광주에서, 그리고 전국의 모든 대도시에서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억압적인 군사지배 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국민들의 단합된 움직임이 일어났다. 시민들의 민주화 의식이 크게 높아졌고, 마침내 이 열흘간의 항쟁에서 흘린 피의 대가로 견고한 군사독재 체제가 무너지면서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2011년 5월 25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유네스코의 인권분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인류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의 기록물로 알려진 1225년 영국의 대헌장(마그나카르타), 1789년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 등과 함께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광주와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가 이 열흘간의 항쟁이 남긴 숭고한 유산을 기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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