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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광주 개입
왜곡


전두환 회고록

 

광주에서 진행되는 작전 상황과 관련해 조언이나 건의를 할 수 조차 없었다. 파출소는 물론 경찰서 까지 경비병력 조차 남겨두지 않은 채 모두 피신해 보안사령부로서는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보안부대 요원이나 정보부 요원은 경찰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경찰이 존재해야만 치안이 유지되고 치안이 유지되어야만 정보부 요원도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7 [전두환 회고록 1권] 383쪽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했던 전두환 씨는 80년 5월18일부터 27일 사이에 광주, 전남에 간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광주지역의 경찰력이 실종된 바람에 보안사의 정보 수집이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전투 정보의 수집과 분석은 작전부대 자체의 정보, 작전 기능이 담당하는 일이고, 중앙정보부나 보안사 등 일반 정보기관이 관여할 여지는 없다” 고 못 박고 있다.

진실

‘5·18’이 발생하고 상황이 악화되자 보안사령부는 광주 현지로 보안사 요원들을 파견했다. 5. 19. 09:00경 보안사 참모회의에서 광주상황에 대한 토의가 있은 뒤 당시 보안사 기획조정처장인 최예섭 준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최예섭 기획조정처장은 광주에 도착, 전교사령관 부속실에 기거하며 상황 파악을 했고, 주요 회의에 참석했다.
보안사에서는 이외에도 합동수사본부 치안본부 조정관으로 파견 중이던 광주일고 출신 홍성률 대령을 광주로 파견했다. 홍 대령은 광주시내로 잠입, 정보수집 및 특수활동을 벌였다. 그가 남긴 보고에 따르면, 그는 광주시 사동의 친척 집에 비밀아지트를 설치하고 전남도경찰국 정보과 소속 경찰과 505보안부대의 정보과 요원의 지원을 받으며 광주시내에서 활동 중이던 정보조를 통합 지휘했다.
- 2007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보고서 112쪽

 

보안사는 항쟁 당시 정보수집과 특수 활동 뿐 아니라, 연행자들에 대한 수사에도 관여했다. 전두환 사령관은 105보안부대장인 최경조 대령을 파견, 수사를 직접 지휘했다. 전 씨가 회고록에서 주장한 보안사의 기능 실종은 진실을 왜곡한 것으로 보안사는 광주민주화운동 초기부터 진압, 수사, 체포, 특수임무 등을 직접 수행했거나 지휘했다. 보안사 기획조정처장의 광주 파견을 사령관이 모르거나, 무관하다고 과연 주장할 수 있는가.
전 씨는 광주민주화운동 기간에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통해 소준열 당시 전교사령관에게 공수부대 사기 진작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직접적으로 5·18에 개입했다.


5월22일 부임 직후 당시 상황을 파악한 결과 공수부대원들의 과잉진압이 광주사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확인돼 공수부대를 광주 비행장으로 철수 시키고 현장 지휘 책임자들에게 질책을 하자, [공수부대원들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는 항의 친서를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통해 보내왔다.
- 1995.12.9.일자 전남일보 1면 [소준열 5·18당시 전교사령관 단독인터뷰]기사


검사 : 5월23일 광주로 내려온 피고인한테서 소 선배,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고 공수부대원의 사기를 죽이지 마십시오 라는 내용의 전두환 피고인 친필 메모를 건네받은 적이 있습니까.
소준열 : 메모지는 받았지만 공수부대원들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는 내용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검찰 조사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 1996.7.6. 5·18사건 21차 공판


1995년 전남일보 특종보도는 12월11일(월)자 동아, 조선, 중앙 등 전 신문이 게재할 정도로 파장을 일으켰으며, 사실상 전두환 씨의 광주 개입을 확인하는 결정적 증언으로 평가받았다. 전두환 씨의 광주 개입 친서는 5·18사건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재차 확인되는데, 결정적으로 임현표 당시 전투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이 헬기 안에서 전 씨의 친서를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 소준열 씨의 진술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전 씨의 사인이 워낙 독특해서 분명하게 기억한다고 밝힌 바 있다.

 

5월 27일 이후 금남로에 진주한 탱크 

 

80년 5월23일 낮 12시경 광주비행장에서 전교사 사령부로 비행하던 UH-1H 헬리콥터 안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친필 메모를 보았다. 광주비행장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만나 전교사로 가는 도중 정 사령관이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읽고 있기에 이를 옆에서 잠깐 읽어보니 전 보안사령관의 친필 메모였다. 메모엔 ‘무리가 따르더라도 조기에 광주사태를 수습하여 달라’는 취지의 당부와 함께 전 보안사령관의 사인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 임현표 전투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준장) 검찰 진술


전두환 씨의 광주 개입은 본인의 거듭되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광주 시위 초기 보안사령부최고위급 간부들의 광주 투입과 활동, 진압 과정에서의 [공수부대 사기 죽이지 말라]는 친서의 확인으로 거짓임이 명백해졌다.
전 씨가 비록 광주 항쟁 기간 중에 광주에 직접 오지는 않았지만(현재까지는 확인하지 못함), 보안사와 합수부, 광주에 투입됐던 특전사라는 비공식 라인을 통해 광주 무력진압을 막후에서 지휘했다.
전두환 씨는 결코 5월 광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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