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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강신석 5·18기념재단 제6대 이사장 별세, 민주사회장(2.8.10:20 업데이트)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21-02-05     조회 : 1089


[부고] 강신석 5·18기념재단 제6대 이사장 별세, 민주사회장

 

 

5·18기념재단 제6대 이사장 강신석 목사님이 2월 5일 오전 84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ㆍ 빈소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광주광역시 동구 필문대로 365)

ㆍ 장지 : 국립 5·18민주묘지(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ㆍ 발인 : 2021. 2. 8.(월) 오전

 

영결예배 : 2.8(월) 10:00 장례식장
하관예배 : 2.8(월) 13:30 국립5·18민주묘지

안장묘역 : 제2묘역 1-113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면서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조화는 사절하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ㆍ 문의 : 공동집행위원장 박종렬, 조선호, 문기전

 


 

 


  

 

<고인이 걸어오신 길>



1938.8.24. 광주광역시 출생
광주 대성초등학교 졸업
광주서중학교 졸업
광주고등학교 졸업
한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1963년 전남 해남 송석교회에서 목회 시작
1968년 무안 해제중앙교회 담임목사
1975년 목포 연동교회 담임목사
1978년 광주무진교회 담임목사
1989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장
1992년 광주기독교연합회(NCC) 회장
1992년 한국실로암선교회 이사장
1994년 광주YMCA 이사장
1995년 한국교회협의회 평화통일위원장

1987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전남본부 위원장
1998년 한빛고 이사장
1999년 5.18민중항쟁 제19주년기념행사위원장
1999년 민주개혁국민연합전국본부 대표
2000년 광주종교인평화회의 상임 공동의장
2001년 우리민족서로돕기광주전남 상임공동대표
2003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2004년 조선대학교 이사장
2007년 광주무진교회 자원 은퇴
2007년 참교육상 수상
2019년 한신상 수상
2021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가족 사항>
•사모 : 강혜영
•자녀 : 강의준 강의권 강의혁
•자부 : 김선미 장현숙 박민영
•손자 : 강정민 강정한 강정인 강정연 강 첨

 

 
강신석 목사님의 삶의 발자취


강신석 목사님은 종교, 교육, 통일 등 전반에 걸친 사회활동에  헌신한 광주지역 원로이시다.

강 목사님은 1938년 8월 24일 아버지 강주원 목사와 어머니 명섬 사이에서 장남으로 광주에서 태어나셨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나는 광주를, 무등산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이를 위해 일하셨고 생을 마감하시기 전까지 사랑하는 무등산 자락에서 사셨다.
1963년 전남 해남 송석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셨고, 2007년 본인이 개척하셨던 광주 무진교회에서 평소 소신인 후배들에게 빨리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소신대로 미리 자원하여 은퇴하셨다.


강 목사님은 1976년 목포연동교회에서 시무하시던 중 광주 양림교회에서 열린 노회에서 유신반대 성명서 낭독을 주도하여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아 1년여 수감 뒤 특별사면 됐으며, 이후 긴급조치로 4개월간 수감된 데 이어 1980년 5월 17일 예비검속 수배명단에 포함됐으나 5.18의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서울로 상경,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주한 독일대사 등을 만나 광주의 진실을 설명하였다. 그 결과 신군부로부터 고초를 당하고 보안대에서 독방 신세를 지기도 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5·18특별법 제정 투쟁 등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삶을 사셨다. 특히, 김영삼 정권 시절 5·18 특별법 제정 백만 명 서명운동을 벌여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백만 명의 서명을 받아냈고 그 결과 신군부 핵심을 재판정에 세우고,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중형선고를 받아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셨다.


1984년 5월 12일에는 독일을 방문, 5·18 민중항쟁의 진상을 구체적으로 알리기 시작해 1988년 5·18 청문회, 5·18 기념일 지정, 망월동 국립묘지 지정 등 한국민주화운동의 푯대를 세우는 데 있어서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데 앞장서 오셨다.


1980년 12월 30일 제1회 ‘고난 당한 자와 함께 드리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 2001년까지 22년 동안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것은 물론, 옥중에 있는 양심수들에게 옷가지를 전달해 주는 등 옥바라지에도 최선을 다했다.
또한 미전향 장기수들이 옥중에 있을 때에도 그들을 돌봐주셨고 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미전향 장기수들 중 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당국과 협의하는데 최선을 다하여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기도 하셨다.


그리고 교육민주화에도 최선을 다하셨다.
1982년 1월 광주 YMCA 중등교사회를 탄생시키는데 무진교회가 그 산실의 역할을 했으며 교육민주화 활동을 하는데 교회가 정신적 토대가 되도록 힘을 쓰셨다. 이후 전교조의 탄생과 해직교사들의 뒷바라지도 강 목사님의 몫이었으며, 전교조 합법화 과정에서 집회, 서명, 연대사업, 인적지원 등 교회의 사회적, 역사적 소명에 충실하셨으며 교육민주화와 전교조 합법화에 크게 기여하여 2007년 참교육상을 수상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나라 민주화와 평화통일 분야에 크게 기여한 점을 인정하여 제 25회 한신상을 수상하셨다.
강 목사님은 장애인 인권을 위해 일하셨고 특히 한국실로암선교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시각장애인들의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시각장애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애쓰셨다. 또한, 광주 종교인 평화회의 상임 공동의장으로서 종교간의 화해, 종교간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위해 일하셨다. 


강 목사님 가정은 아버지 강주원 목사의 고향인 나주 방산(다도)까지 선교하러 온 타마자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직접 받아들인 3대 목사 가정으로, 아버지 강주원 목사님, 아들 강의준 목사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기업으로 삼은 가정이다. 강 목사님은 신앙의 힘으로 평생을 사셨으며, 마지막 순간에도 기도하고 찬송하며 할렐루야와 아멘을 외치며 생을 마감하셨다. 신앙을 몸소 삶의 모습으로 보여줘 신앙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을 보여주셨다.

 


 

 

 

- 뉴스앤조이 [영상] 5·18 40주년,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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