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컨텐츠로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재단활동

HOME > 알림·홍보 > 재단활동
2158번 게시글
다시 생각해보는 ‘인권’ <아시아 인권헌장>과 <부속선언>의 의의 / 안진(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22-01-17     조회 : 160

 

※ <부속선언>의 영문제목: Declaration on the Rights to Justice, the Rights to Peace, the Rights to Culture

 

 

다시 생각해보는 ‘인권’

<아시아 인권헌장>과 <부속선언>의 의의

 

 

 안진(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79년 일어난 12·12군사쿠데타의 주범이자 뒤이어 발생했던 5·18항쟁에서 학살의 주범으로 알려진 전두환 씨가 세상을 떠났던 지난 11월 23일의 일이다. 필자는 요통 치료를 위해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있었는데 전두환씨의 사망소식이 뉴스로 전해졌고, 그 뉴스를 들은 간호사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사죄한다.’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곁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었다. 어느 평범한 시민의 간명한 표현 한마디가 필자에게는 진한 울림을 주었다. 국제인권법이나 헌법 속에서 인권을 찾는 나와 달리 인권의 긴 목록들을 배웠을 리 만무한 그 여성이 너무 쉽게 인권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이후 성취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이제 더 이상 군사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실질적 민주주의의 달성은 힘들지언정 적어도 권위주의로의 퇴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역회귀 불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선거에 의해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사유로 탄핵하여 물러나게 했던 ‘촛불혁명’의 힘을 보면 한국에서 권위주의 체제로의 역회귀 불가능성을 믿는 정치학자들의 생각이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군사쿠데타가 반복되고 있고, 미얀마의 경우에서처럼 어렵사리 민간정부가 수립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언제 다시 권위주의 체제 혹은  군부독재로 회귀할지 모를 정도로 위태롭게 보인다. 군부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했던 것은 더 이상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라는 이름으로 경제성장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정당화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 신흥공업국가로 압축적 성장을 이룬 싱가포르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아시아적 민주주의(Asian-style democracy)’를 표방하며, 서구 민주주의가 강조하는 시민 개인의 자유와 인권 대신에 집단적 규율과 통제로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법을 제정하고, 시민스스로 뽑은 대표들이 그 법에 따라 통치하는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것이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서는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2차 대전 이후 신생독립국가를 수립하기 전에 식민지 통치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서구 국가들이 대내적으로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 의회민주주의 국가를 형성했던 것과 다르게 아시아 국가들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식민지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내부적 혁명이 좌절되고 제국주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피나는 독립투쟁을 해야 했다. 서구사회에 비해 시민주권을 확립하는 대내적 혁명의 과정이 생략되거나 제국주의 지배에 의해 왜곡되었기에 전후 독립국가 형성 후에도 권위주의 체제의 수립과 통치가 지배적 경향이 되었다. 

 

서구에서 근대시민혁명으로 수립된 근대국가의 핵심가치를 우리식으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주권재민’일 것이다. 모든 권력은 시민들로부터 나오고 국가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만드는 목적은 시민 개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의 존재이유는 시민의 인권보장에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 선포된 프랑스 인권선언문(1789)은 국가가 보장해야할 시민의 권리,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의 핵심은 자유, 재산, 안전 및 압제에 대한 저항권이라고 천명하였다. 국가가 본래의 목적을 위해 작동하지 않을 때, 그것에 저항하고 불복종할 권리가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에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그것을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제1조는 인권의 개념에 대한 규정이기 때문에 사실상 맨 앞의 규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1776) 또한 창조주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부여한 권리인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를 조직했으며,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라는 것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인민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에 의한 공정한 통치, 올바른 국가권력의 작동에 대한 요구는 시민의 ‘정의권’(the right to justice)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권이 짓밟힐 때, 국가의 주권을 가진 주인이 거꾸로 국가에 의해 탄압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될 때, 분노한 시민이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저항권이니 저항권은 정의권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권리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 인권헌장의 <부속선언>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유독 질기게 존속되고 있는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보장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권리로서 정의권을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갖는 다른 하나의 공통점은 인종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집단들로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개별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은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적 가치’로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의 잠재력이 될 수 있었지만, 제국주의 분할통치의 영향으로 신생독립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는 역으로 종족들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으로 표출되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는 군부의 지도자들이 종족들간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아시아 인권헌장의 <부속선언>이 위에서 언급한 ‘정의권’ 외에도 분쟁과 공포에서 평화로울 권리인 ‘평화권’을 강조한 것은 아시아 사회의 이러한 특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민족, 종족들의 문화적 다양성과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구성원들이 단지 ‘문화권’의 향유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종식시키고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부속선언>이 ‘평화권’과 함께 ‘문화권’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시아 인권활동가 200여명이 3년여에 걸친 치열한 토론 끝에 1998년 5월 18일 인권도시 광주에서 <아시아 인권헌장>을 선포했던 것은 사회적, 역사적인 면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갖는특수성 속에서도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열망과 연대의 표현일 것이다. 아시아 인권위원회와  5·18기념재단이 <헌장> 이 선포된지 20주년이 된 2018년 다시금 기초위원회를 구성하여 2년여 간의 토론을 거쳐 <부속선언>을 마련한 것은 아시아 권위주의 국가들의 민중들이 폭압적인 인권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길잡이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속선언>이 모쪼록 그 역할을 하길 바란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평범한 믿음이 인권의 출발이다. 국가는 그런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것이다. 국가가 불의의 폭력으로 인권을 유린할 때 그에 맞서 저항하는 것, 그 저항을 지지하고 함께 해주는 것이 인권의 실천이다. 누군가가 그의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차별당할 때, 그것을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그 차별에 함께 맞서 싸워줄 때 나의 인권도 보장되는 것이 아닐까? 정당한 분노 속에서 그럴 용기는 나온다. 작은 용기와 실천하는 작은 행동 속에서 선언은 존재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 아시아 인권헌장(Asian Human Rights Charter) 

 - 5・18기념재단 영문 사이트(http://eng.518.org) > Information & Resources > Publications 

 

 

 ※ 5·18기념재단 소식지 <주먹밥> 59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클릭) 

 

 

첨부파일


2158번 게시글의 이전글, 다음글
이전글 5·18, 이제는 세계로 / 정병호(광주일보 기자)
다음글 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피해자’와 복합적 집단트라우마 / 김명희(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
  • 페이스북공유
  • 트위터공유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인쇄
Top이동
61965 광주광역시 서구 내방로 152 5·18기념문화센터 1층 5·18기념재단(쌍촌동 1268번지) 전화번호 062-360-0518 팩스번호 062-36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