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의 사과에는 전두환이 없다 / 구영식 <오마이뉴스> 부장 | ||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22-01-26 조회 : 221 | ||
윤석열 후보의 사과에는 전두환이 없다
구영식 <오마이뉴스> 부장,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아이고 두환아..."
지난 11월 23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동네 목욕탕 휴게실에 설치된 TV 화면에서는 전두환 사망 속보가 떴고, 이것을 보던 한 동네주민은 그렇게 탄식했다. 끝내 5·18 학살을 사과하지 않고 떠난 학살자 전두환에 대한 조롱이자 원망이었다. 육사 동기였던 노태우에 이어 전두환까지 죽자 일부에서는 "이제는 80년대를 보내자"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5·18 학살로 시작된 80년대를 노태우.전두환의 죽음만으로 보낼 수는 없다. 서울대 법대생 시절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전두환 찬양 망언을 보니 더욱 그렇다.
무기징역 구형한 윤석열한테 터져 나온 전두환 찬양 망언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측근의 총격으로 사망하고(10.26),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쿠데타(12.12)를 일으킨 뒤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5.17) 전까지 서울의 대학가 등에서는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시기를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 빗대 서울의 봄이라고 부른다.
그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에서도 법대와 경영대, 음대 등이 철야토론을 벌였다. 법대에서는 철야 토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신군부의 쿠데타에 대한 모의형사재판(서울대 법대 동아리 형사법학회 주최)을 열어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5월 8일). 전두환이 이끈 쿠데타가 "헌법을 침해한 중대범죄"(2019년 검찰총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모의형사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아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가 법대 2학년(79학번)이었던 윤 후보였다.
그런데 애초 윤 후보가 당시 검사역을 맡아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왔다. 서울대 79학번 동기들조차도 <구수한 윤석열>이라는 책에서 "윤석열 전 총장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 사건 직후 서울대 법대 형사법학회가 개최한 모의재판에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지난 7월 7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전두환 사형 구형 신화를 수정했다. 자신은 검사가 아니라 재판장을 맡았고,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한 것이 아니라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선고한 시기도 5·18 이후가 아닌 5월 8일이었다는 것이다. 정작 사형을 선고받은 이는 신현확 전 국무총리였다. 윤 후보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그분이 쿠데타의 수괴인 줄 알고 사형선고를 내렸다"라고 증언했다. 이후 윤 후보는 외갓집인 강릉에 석달 간 피신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안전하게 피신한 시기 광주에서는 피의 학살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41년의 세월이 흘렀고, ‘칼잡이’(잘나가는 특수통 검사를 일컫는 말)로 승승장구하던 윤 후보는 검찰총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권에 도전했다. 그런데 11월 5일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전 문제의 전두환 찬양 망언이 터져 나왔다. 윤 후보는 10월 19일 부산해운대구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는 잘했다고 주장한 근거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에 있으면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국정운영을 전문가 등에게) 맡긴 것"을 들었다. 얼핏 보면 군 출신인 전두환처럼 상명하복 검찰조직을 통할해본 자신이 국정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전두환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후보의 발언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수용할 수 없는 왜곡된 역사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단 7개 문장의 사과문... 전두환 찬양은 광주와 5·18에 한정된 문제 아냐
전두환 찬양 발언의 후폭풍이 거세자 윤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첫 지방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했다(11월 10일). 고 홍남순 변호사 화순 생가 방문과 유가족 비공개 차담, 5·18자유공원 방문 등의 일정이 이어졌고, 마지막 일정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 하지만 윤 후보의 광주방문을 반대한 시민들에 막혀 5·18민중항쟁추모탑에는 헌화.분향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쩡쩡한 상황에서 사과문을 읽어내려갔다. 단 7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아주 짤막한 사과문이었다. 일부에서는 “성명 발표도 전두환처럼 한다”라고 비꼬았다. 윤 후보의 사과문 낭독을 1995년 전두환의 ‘골목성명’에 빗댄 것이다(흥미롭게도 윤 후보의 사과문 낭독 사진은 대선캠프 공식사이트이나 블로그, 페북,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저는 40여 년 전 오월의 광주시민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광주의 아픈 역사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고, 광주의 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오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여러분께서 염원하시는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고 여러분께서 쟁취하신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 후보의 사과문에는 전두환이 없다. 오직 광주와 5·18에 대한 사과만 있다. 물론 전두환 찬양은 분명히 광주와 5·18에 대한 모독이다. 하지만 전두환 찬양은 광주와 5·18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인권 등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두환에게 요구하는 사과는 광주와 5·18을 넘어선 것이다. 전두환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 결성, 광주 학살, 체육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반란수괴이자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한 ‘독재자’다. <뉴욕타임즈>,
하지만 윤 후보는 그런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라고 찬양한 망언을 사과하거나 철회하지 않았다. 이는 41년 전 모의형사재판에서 전두환의 쿠데타를 두고 "헌법을 침해한 중대범죄"라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자신의 신념을 뒤집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중에 조문계획을 번복하긴 했지만 전두환 조문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11월 23일)라고 대답한 것은 윤 후보의 진심이었다고 본다.
특히 윤 후보가 최소한 광주와 5·18에 대해서만이라도 진정한 사과를 하려고 했다면, 사과와 함께 5·18의 남은 과제들에 대한 자신의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어야 했다. 국민의힘 내 5·18 왜곡.폄훼 인사들(김진태.김순례.이종명 등)에 대한 인적 청산, 전두환 등 국립묘지 안장 배제를 위한 국가장법 개정,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사법적 단죄,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포함 등을 약속했어야 했다. 하지만 윤 후보에게는 헌법 제1조가 규정한 ‘민주공화국’에 걸맞는 역사의식도, 5·18의 남은 과제를 풀기 위한 미래도 없었다. (2021-12-2)
※ 5·18기념재단 소식지 <주먹밥> 59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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