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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래” 사과는 없었다. 전두환, 광주법원 출석(3.11)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19-03-15     조회 : 445

 

 

 

“이거 왜 이래” 사과는 없었다. 전두환, 광주법원 출석(3.11)

 

 

2017년 4월 출간한 본인의 회고록에서 故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전두환이 광주법정에 출석했다.

 

3월 1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전두환의 공판이 열렸다.

 

두 차례의 재판 연기와 관할이전 신청은 재판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회피한다는 의혹과 분노를 자아냈다. 전두환씨는 강제 구인을 앞둔 시점에서야 광주법정에 출두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故 조비오 신부가 증언한 5·18 당시 헬기 사격이다. 전두환은 부인하지만 헬기사격은 2018년 2월 5·18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5개월간 62만 쪽에 이르는 자료를 분석하고, 190개 군부대·관련기관 방문하고, 군 관계자·목격자 120명을 조사해 나온 결론이다. 국과수가 검증을 마친 전일빌딩 10층의 150여 개 탄흔 역시 지워지지 않는 증거다. 

 

명백한 증거와 검증 결과마저 잡아떼는 전두환에게 사과 한마디는 무리였을까. 혹시나 하며 기대했던 광주 시민들이 이날 본 것은 "왜 이래"라는 짜증과 법정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었습니다.

 

국민적 관심 속에서 연희동을 출발한 전두환씨 일행은 휴게소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광주까지 내려왔다. 예정보다 빠른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한 전두환 일행은 순식간에 법원에 들어가 버렸다.

 

재판장이 처음 이름을 부를 때는 두 손을 모으며 자세를 바로 했던 전두환은 변호사의 변론이 길어지자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사과는 없었고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전두환은 5·18은 물론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발언도 없었다. 법정에서 나온 전씨의 차량은 ‘살인마 전두환을 처벌하라’를 외치는 시민들에 둘러싸여 30여분 만에 법원을 빠져나갔다.

 

 


 

 


 

 

 

전두환 측은 법정에서 "과거 국가 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며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전두환은 재판장이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는 과정에서 "재판장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고 헤드셋을 쓰고 다시 한번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았다.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인 인정신문에서도 헤드셋을 쓴 채 생년월일과 주거지 주소, 기준지 주소 등을 확인하는 질문에 모두 "네 맞습니다"고 답변했다. 부인 이순자는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전두환과 나란히 앉았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며 전두환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5·18 당시 헬기 사격설, 특히 조비오 신부가 주장한 5월 21일 오후 2시쯤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의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한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허위사실로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정 변호사는 5·18 당시 광주에서 기총소사는 없었으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해도 조 신부가 주장하는 시점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공소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본인의 기억과 국가 기관 기록, (1995년) 검찰 수사 기록을 토대로 확인된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했다.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기록해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정 변호사는 이날 형사소송법 319조를 근거로 이 사건의 범죄지 관할을 광주라고 볼 수 없다며 재판 관할 이전을 신청하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부인 이순자도 별도로 재판부에 편지를 전달했다. 재판은 오후 2시 30분에 시작하여 3시 45분 즈음 끝났다.

 

다음 공판은 오는 4월 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한편, 법원 옆 동산초등학교 학생들은 전두환이 들어간 법정을 향해 창문을 열고 “전두환은 물러나라” 구호를 외쳤다. 주위 어른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과 구호로 화답했다.

 

보수단체는 3월 15일 오전 광주 동산초등학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들은 그 어떤 집단의 전위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교장, 교감, 담임이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교육공무원법, 초중등교육법 등이 정한 위반 사항에 따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열린 반독재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의 모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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