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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비어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5·18역사 보호구역, 505보안부대 옛터 / 엄수경(작가)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19-03-18     조회 : 549

 

 

 

5·18역사 보호구역, 505보안부대 옛터
우리는 왜 비어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엄수경 작가

 

그 집에 들어섰을 때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제26호 505보안부대 옛터를 처음 찾았던 날, 그 집은 도심 속의 섬 그 자체였다.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립되어 있었다. 광주광역시에서 부착한 무단출입금지 경고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1971년 군정보부가 들어섰을 때 당시 주민들은 ‘무등상사’라는 이름으로, 초등학생들은 그 앞을 지나가기가 무서웠다고 기억한다. 정문을 두 사람의 군인이 총을 들고 날마다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벼락을 따라 조성한 수림은 울창한 녹지생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은 은밀한 장소라도 되는 것처럼,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었다고 말한다. 

 

본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두 곳으로 건물 내부에 1개, 건물 외부에 1개가 있다. 건물 외부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폭은 1미터 정도이며 12계단이다. 당시 관련이 있는 증언자들은 지하로 끌려갔을 때 계단을 30개 정도 내려갔노라고 말한다. 그들이 느꼈던 심리적 부담과 공포를 실감하게 하는 증언이 아닐 수 없다. 건물 내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왼쪽에 가장 큰 방이 1개, 오른쪽으로 7개 방이 있다. 가장 작은방은 계단 바로 밑에 있다. 사람이 들어가 좌불상처럼 가부좌로 앉아 있어야 할 크기이다. 높이 140센티, 가로 150센티, 세로 162센티인 이 작은 방에 세사람이 함께 갇혀 있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2009년 4월 발생한 화재로 인하여 식당건물 지붕은 내려앉고, 건물 창틀은 뜯기고,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다. 문짝과 천장은 떨어지고 널브러져 있다. 공터는 채소밭으로 바뀌었고 주변은 쓰레기와 오물로 어지럽혀져 있다. 사람들은 보호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5·18사적지 중 상무대와 영창이 새로 지어져 5·18 당시의 상황들을 재연한 공간이라면 505보안부대 옛터는 당시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생생한 역사 현장이다.


이곳을 찾았던 어떤 이는 뭉개진 기억의 벽이며 방바닥이며 깨진 창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조난 신호를 들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흔적을 바라보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기억들을 찾아내고, 어떤 이는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 꿰맞췄다. 어떤 이는 5·18 당시 상무관에서 만났던 주검들이 아직도 생생하고 두려워 마주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다. 담쟁이덩굴의 푸르디푸른 융단 사이로 손가락이 보였다, 발가락이 보였다. 어깨를 맞대고 팔십년 오월을 붙들고 있던 질기도 찰긴 생명력을 본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집을 찾을 때마다 아직 떠나가지 못한 넋들이 한 풍경, 풍경이 되어 말을 걸었다. 때로는 바람으로, 빛으로, 색깔로, 소리로, 냄새로 가다온 풍경들. 역사기록이라는 소명의식이나, 예술이라는 허울 좋은 옷이나, 문화담론이라는 거창한 생각으로 셔터를 누른 것은 아니었다. 단지 5·18 당시 기억들이 소환이 된 고마운 순간 때문이었다.

 

 

 

광주광역시 민선7기 문화 분야 공약사항 6대과제에서 공약실천 세부실행계획(안)에 5·18민주화운동 문화콘텐츠 제작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에게 5·18민주화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현안인가를 깨닫게 한다.

 

그런데 문화콘텐츠라는 부분에서 노파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광주광역시 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문화콘텐츠 열풍 앓이에 빠져 있다. 문화콘텐츠를 물질적 자본으로만 환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장 기초가 되는 정신적인 자본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시기라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성과와 가시적인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5·18사적지와 관련하여 보존과 활용에 관해 고심해왔다. 5·18사적지가 중요한 기억의 터인 것은 자명하다. 그 중에서도 현재 국군광주병원과 505부안부대 옛터는 재현 공간이 아니라 훼손되기는 했으나 원형을 갖추고 있는 공간이다. 5·18 당시 “통합병원(국군광주병원)은 천국, 보안대(505보안부대)는 지옥”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상이한 공간이다. 광주광역시에서는 국군광주병원 옛터는 5·18민주화운동과 국가폭력 피해자를 치유하는 전문기관으로, 505보안부대 옛터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 체험관으로 활용할 계획에 있다.

 

 

우리는 왜, 비워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활용이라는 단어에 대해 뭔가를 채워 넣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늘 앞서 있다. 보존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안전진단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런데 전시공간이나 다른 공간으로 활용은 가능하다고 말들을 한다.

 

이 말은 모순이지 않는가? 안전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새롭게 뭔가로 변신을 꿈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금이 갔다고 치면 집 전체를 리모델링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되는 곳만을 보수를 하고 원형을 보존하는 것처럼 505보안부대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5·18사적지가 구 도청처럼 또 다시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것으로 변신도, 5·18사적지들이 더 이상 활용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 채워 넣기를 감행하지 않았으면 한다.

 

5·18사적지의 활용으로 인해 공간에 대한 정체성, 집단 기억이 더 이상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두자는 것이 아니다. 관리는 하되 활용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지 말자는 의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역사체험관이 필요하다면 505보안부대가 아니어도 되지 않는가?

 

아직 손을 대지 않은 5·18사적지, 특히 505보안대만큼은 5·18역사 보호구역으로 지정을 하면 어떨까?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을 한다면 상수원보호구역처럼 5·18역사 보호구역이 될 것이다. 505보안부대의 보존(잘 보호하고 간수하여 남김)이나 보전(온전하게 보호하여 유지함)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의 집단기억 장소이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공간 속에서도 수많은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쓰러져 간 건물 안 뜯겨진 내부 깨진 유리창 틈새에서도 생명의 순환은 현재진행형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박제화하여 건물 안에 더 이상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505보안부대 옛터가 활용이 아닌 보전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역사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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