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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피해자’와 복합적 집단트라우마 / 김명희(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22-01-17     조회 : 254

 

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피해자’와 복합적 집단트라우마

 

 

김명희(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

 

 

이 글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추진한 연구과제의 일환으로 2020년 10월 13일에서 2021년 5월 10일까지 필자가 연구책임을 맡아 수행한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등의 집단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사회학적 표본 조사 연구>의 주요 성과를 소개하기 위해 쓰였다. 이 공동연구의 성과를 요약하면 첫째, 5·18 피해자의 여러 유형을 새롭게 도출하고, 둘째, 의료적 접근방식을 넘어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속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개념화를 제안했으며, 셋째, 트라우마 연구에 인권적 관점을 도입하여 중대한 인권침해로 인한 집단트라우마를 이해할 새로운 연구방법론과 진단기준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집단트라우마 연구방법론”과 “인권기반 5·18 트라우마 진단기준”에 대한 나의 최근 연구로서 “5·18 집단트라우마 연구방법론과 새로운 진단 기준: 과거 청산의 과학사회학을 향하여”(김명희, 2021) ; “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피해자’와 복합적 집단트라우마: 국가범죄의 피해자학을 향하여”(김명희, 2021). 

 각각을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다음과 같다. 

 

 

5·18 피해자 유형학의 재구성: 인권에 기반한 공동체 접근

 

누가 5·18 피해자인가? 5·18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그간 5·18 법제와 조사 관행은 피해자의 범위를 직접적 피해당사자나 그 (유)가족에 한정하고 있기에 다양한 형태의 시민피해자 유형을 포함하지 못하며 신체적·물리적 차원에 환원되지 않는 정신적·사회적 피해를 고려하지 못했다. 그 결과 다양한 피해 유형들이 보상과정에서 배제됨으로써 보상과정 자체가 피해자의 차별과 억압을 통한 2차적 피해와 트라우마를 유발했다. 피해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실태조사와 다양한 피해 유형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을 초기에 마련하지 못한 것은 1988년 노태우 정권하에 제출된 광주사태 치유방안’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보상적 접근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제정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집단적인 피해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전혀 상상하지 못함으로써 이에 대한 해법을 제도화하려는 시각을 정립하지 못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직접적 피해당사자와 일반 시민을 분리시키고 지역주민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5·18의 직접적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8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피해자’의 범위를 5·18민주화운동의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던 사람 중 희생자 외의 사람”까지 포괄하여 규정하고(제2조), 2021년 개정법을 통해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등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을 진상규명의 범위에 포함한 것은(제3조) 시민피해자 혹은 광의의 피해생존자 중심의 과거청산 국면을 열어낼 유의미한 단초를 마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국제인권규범, 예컨대 <유엔 권력범죄와 남용의 희생자를 위한 정의의 기본원칙 선언>(1985)이나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2005)은 권력의 작위와 부작위를 통해 겪은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 침해나 정서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희생자(피해자)로 정의한다. 특히 이들 문서가 “고통당하는 희생자를 지원하거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 개입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피해자로 규정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연구팀은 국가가 자행한 인도에 반하는 범죄이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었던 5·18 피해의 실상에 맞는 피해자 유형학을 새롭게 구축하고, 국가폭력 피해자의 집단트라우마를 고찰할 연구방법론과 사회과학적 진단기준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즉 국가폭력 피해자의 집단트라우마에 대한 인권기반 접근(Human Rights Based Approach, HRBA), 나아가 ‘인권기반 공동체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인권적 관점과 트라우마 연구를 통합하는 연구 관점을 나타낸다. 첫째, 인권기반 접근이란 인권침해 사건이 피해자의 취약성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사건에 대한 권리주체로 인지하는 관점을 말한다. 즉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는 국가가 제시한 처방전의 수동적인 수취인이나 동정과 보상을 받아야 할 시혜자가 아니라, 권리를 가진 능동적 행위 주체다. 둘째, 트라우마에 대한 공동체적 접근은 직접적 당사자나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적 범주에만 주목하는 관행에서 탈피해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발생과 재생산에 개입하는 사회적 환경과 다층적 행위자들의 존재에 주목하는 관점을 말한다. 이는 국가폭력을 묵인하고 재생산하는 사회문화적 토대 및 정치적 프레임을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피해회복의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제3자 및 시민의 역할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보상적-의료적 접근과 구분된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5·18 피해자 유형을 ① 직접적 피해자 ② (유)가족 1세대 및 2세대 ③ 일선대응인(의료인, 수습대원, 자원봉사자, 지역사회 리더, 기자 등) ④ 목격자(참여적·우연적 목격자 및 광주 거주자), ⑤ 광주·전남 지역사회 일원 ⑥ 사후노출 피해자로 나누고, 모두 50명의 생애사를 인터뷰하여 5·18 집단트라우마에 대한 질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나아가 시민적·정치적 권리(자유권), 경제적·사회적 권리(사회권),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라는 세 가지 권리 기준에 입각해 5·18로 인권침해 경험과 복합적 집단트라우마의 발생 경로를 살펴보았다. 

 

 

<그림 1> 5·18 집단트라우마의 영향범위

  

- 5·18 집단트라우마의 영향범위

 

 

 

새로운 진단개념: 국가폭력 트라우마로서 복합적 집단트라우마

 

5·18 트라우마의 집단성과 복잡성을 헤아리기 위해선 어떤 개념이 필요한가? 연구팀이 제안한 복합적 집단트라우마(Complex Collective Trauma, CCT)는 단일 사건에 대한 외상 반응을 일컫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정신과적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개념화다. 많은 비판서들이 지적하듯,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을 지닌 국가폭력 트라우마를 개인적이고 의료적인 것으로 환원한다는 맹점이 있다. 또한 이는 5·18 트라우마가 지닌 집단성과 장기성을 설명하기에도 부족하다. 반면 복합적 집단트라우마 개념은 단지 개인이 입은 피해가 ‘집단’ 차원의 피해로 귀결되었다는 결과론적 용법을 넘어 외상적 사건의 집단적 경험과 의미화 과정이라는 발생론적 용법을 포함하며, 다양한 행위자 수준에서(개인, 가족, 지역사회, 국가/공동체) 지속·누적·재생산되고 이들의 이전/이후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지칭한다. 이 개념은 일회적인 국가폭력 사건에 그치지 않고 사건 이후에도 조직적인 진실의 부인(denial)과 계속적인 인권침해, 부정의 속에서 재생산되었던 5·18 집단트라우마의 복합성과 역동성을 보다 개방적으로 탐구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물론 집단트라우마가 발현되고 작동하는 양상은 각 피해집단에 고유한 경험과 생애사적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번 연구의 주안점은 5·18 피해자들이 겪은 인권침해 경험이 어떠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유발하는지 ‘연계’하여 고찰하는 데 있었다. 

 

 

5·18 피해자의 권리와 집단트라우마 동학

 

본 연구팀이 진행한 예비적 표본조사(시뮬레이션) 결과에 입각해 5·18 직접적 피해자, 유가족 1세대 및 2세대, 일선대응인, 목격자, 사후노출자가 드러내는 인권침해 경험과 집단트라우마의 양상을 아울러 살피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접적 피해자들은 5·18 당시의 생명권과 안전권, 건강권 등을 침해받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만큼이나 등급화된 금전보상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체되고 왜곡된 과거청산의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지속되고 재생산되며 강화되는 경험을 해왔다. 예컨대 직접적 피해자들은 5·18 당시 경험한 물리적 폭력과 신체적 상이, 구속과 고문이라는 인권유린의 경험만이 아니라 사건 그 이후에도 ‘폭도’와 ‘빨갱이’라는 집단적 오명과 낙인, 지속적인 감시와 사찰, 때늦은 피해회복, 불완전한 진실규명과 정의 실현, 5·18 왜곡과 불명예 속에서 반복되는 인권침해를 겪었다. 이는 ‘반보벤-바시오우니 원칙’(2005), 이른바 ‘유엔 인권침해 피해자 권리장전’에서 제시된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 즉 진상규명을 의미하는 진실에 대한 권리, 가해자의 책임 시인과 처벌을 의미하는 정의에 대한 권리, 모든 상해와 불이익으로부터 회복을 보장하는 피해회복(배상)의 권리가 침해된 결과다. 따라서 직접적 피해자들의 경우, 증언자로서의 저항이나 사회적 인정투쟁은 트라우마의 경감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만성적이고 복합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TSD)와 재희생자화(revictimization)의 메커니즘에 노출되어 있었다. 

 

둘째, 5·18 유가족 1세대와 2세대는 가족의 사망으로 인한 상실(loss)의 고통 이후 명예 회복을 위한 인정투쟁과 진실규명의 주체로 나서는 과정에서 애도할 권리, 피해회복의 권리, 돌봄을 받을 권리, 진실을 알 권리 등 다양한 인권침해를 새롭게 경험했으며, 트라우마가 세대를 통해 전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가족 2세대의 경우 2000년대 이후의 5.18 왜곡과 ‘특권-보상’ 프레임에 의해 상징적·문화적 폭력을 겪고 있었으며 사회적 인정과 평가에 따라 트라우마 완화와 변형, 재생산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러한 유가족 1세대 및 2세대의 트라우마는 문화적·역사적 트라우마가 교차하는 양상을 보였다.

 

셋째, 일선대응인은 고통받은 사람을 돕기 위해 사건에 뛰어들었음에도 계엄군으로부터 생명권과 안전권 등이 위협당하고, 일부는 구속까지 당하는 등 극심한 공포를 경험했다. 이들은 직접적 피해자들에게 전형적인 회피와 재경험, 5·18에 대한 만성적인 속박(captivity)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아가 이들은 사회적 발언을 멈출 수 없다는 전달자로서의 소명과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반복적인 증언을 수행하고 있었다. 

 

넷째, 5·18 목격자는 잠재적인 생존자로서 가해자인 신군부로부터 생명권, 안전권, 건강권의 위협과 침해를 경험하고 가해자와의 관계에 트라우마의 패턴과 발전 경로가 상당 부분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가폭력의 직접적 피해자의 트라우마 유형과 상당한 공통점을 보였다. 나아가 진실의 왜곡과 부인(denial), ‘광주사람’을 향한 집단적 오명과 낙인이 평등권/발전권의 침해로 이어지면서 5·18 목격자의 집단정체성을 위협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어떤 목격자들은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을 극복하고자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전달자이자 증언자로서의 삶을 자처하는 문화적 트라우마의 동학을 드러내 보였다. 이같이 5·18 목격자의 트라우마는 가해자뿐 아니라 국가폭력 희생자/피해자와의 관계가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면서, ‘말할 수 있음’의 가능 조건에 따라 훨씬 더 역동적이고 관여적인 발전유형을 나타냈다.  

 

다섯째, 사후노출자의 경우 5·18 사진이나 광주 비디오 등 외상물질과 접촉하며 5·18의 진실과 사후적으로 접속하면서 정신적 역동을 겪거나 5·18 희생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통의 전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는 진실을 알 권리와 정의에 대한 권리를 침해받은 결과이며, 사후노출자의 트라우마 경험은 역설적으로 5·18 과거청산을 위한 실천력으로 전화되면서 5·18 집단트라우마의 자장이 확장되는 맥락을 드러내 보였다. 

 

 

전망과 과제: 인권에 기반한 사회적 치유

 

이 연구의 결과는 직접적 피해자 유형과 정도와 차이는 있지만 유가족, 일선대응인, 목격자, 사후노출자 역시 진실에 대한 권리, 정의에 대한 권리, 피해회복의 권리가 유린됨에 따라 고통받아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의 피해자가 갖고 있었던 트라우마를 지속, 변형,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했으며 심지어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5·18 트라우마의 치유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인권에 기반하고 사회적 지지에 힘입은 이행기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실질적으로 입증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연구팀이 시도했던 5·18 피해자 유형의 재구성은 단지 피해자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함이 아니다. 말할 수 없었던 피해를 발굴하고 가시화하는 작업은 고통의 역사성과 집합성을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구체적인 생존피해자의 실존과 연결하여, 진실과 정의에 닻을 내린 집합적 피해회복과 사회적 청산의 길을 새롭게 열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피해자’와 복합적 집단트라우마: 국가범죄의 피해자학을 향하여(김명희, 2021)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http://cnu518.jnu.ac.kr) > 학술DB > 민주주의와 인권 수록 논문 검색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1_07_01&wr_id=570

 

* 5·18 집단트라우마 연구방법론과 새로운 진단 기준 : 과거 청산의 과학사회학을 향하여(김명희, 2021) [경제와사회 통권 제130호]

 - 비판사회학회(https://criso.or.kr/22) > 연보 검색 

 

 

 

 

누군가에게는 40년이나 지난 과거, 하지만 여전히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전두환 사망일(2021.11.23.) 오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아 온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헬기 사격을 증언하며 5·18진상규명에도 앞장섰지만 고인은 끝내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다.

 

 

사진관을 운영하며 가족들에게 조차 시민군 활동을 숨기고 5·18 유공자 신청도 하지 않은 5·18 시민군 임성복씨가 지난 12월 16일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39년간 숨겨왔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3년 전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렸었다. 

 

“1980년 5월 이후, 항상 뒤에서 쫓아오는 것 같아요. 전두환 그 패거리들이 뒤에와서 꼭 잡아가서 죽여버릴 것 같고.”, “이런 사실을 얘기해봤자 우리 가족이 더 마음만 아프고 더 안 좋을 것이고.”, “제가 이런 말을 한 것도 한 3년 됐을까? 가족들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봤냐 그런 말을 들을 때 내 스스로도 치유를 해야지 내 마음을 닫혀버리면 안되겠구나”

 

‘시민군의 딸’은 5월만 다가오면 술에 취해 몸부림을 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려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전남대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환우들에게 미술심리치료 재능기부를 해왔다.



※ 5·18기념재단 소식지 <주먹밥> 59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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