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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마저 손쉽게 모욕…지방혐오 못 끊으면 지방소멸 막지 못한다 / 안준영(부산일보 기자)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22-02-24     조회 : 362

- 지난 1년간 네이버 뉴스의 지방혐오 댓글 2만 3589건을 분석해 워드 클라우드로 표현했다. 청록색이 전라도, 붉은색이 경상도, 노란색이 지역 전체, 검은색이 서울·경기·충청·강원 등 기타지역


5·18마저 손쉽게 모욕…지방혐오 못 끊으면 지방소멸 막지 못한다

안준영(부산일보 사회부 기자)


지방에 대한 혐오와 비하,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라져 서로를 헐뜯는, 1970~80년대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갈등만이 지방혐오가 아니다. 사실인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포털사이트에서 지역의 사건사고를 검색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역시 ○○(도시명)놈들은 근본부터 답이 없다’ ‘△△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등 지역적 특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사고를 특정 도시와 연관 짓는 댓글들이 넘쳐난다. 논리적 근거나 이성 따위는 찾을 수 없다. 


광주·전라도 겨냥한 혐오의 칼날

<부산일보>는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 횡행하는 지방혐오 실태를 포착하기 위해 부경대 지방분권발전연구소와 함께 네이버 뉴스에 1년간 달린 댓글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2020년 7월 1일부터 올 6월 31일까지 게재된 기사 중 부산, 광주, 대구, 경상도, 전라도, 서울 등 6개 키워드를 포함한 기사 6만 4319건을 무작위 선정했고 여기서 279만 9351건의 댓글을 추출했다. 온라인상의 지방혐오 실태를 확인하기 위한 빅데이터 분석은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 지방혐오 표현이 담긴 댓글 2만 3000여 개를 뽑아냈고, 언어 네트워크 분석(SNA)과 토픽 모델링 분석 등으로 분석했다.

온라인에서 범람하는 지방혐오는 특정 지역에 대한 멸시와 모욕을 가득 담고 있었다. 폭동, 홍어, 통수, 쌍도, 과메기, 통구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온라인상의 지방혐오는 사실상 광주나 전라도 혐오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여러 혐오표현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표현은 ‘폭동’(3024회)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격하하며 광주 지역을 모욕하는 혐오단어다. 폭동의 뒤를 이어 라도(2856회), 홍어(2623회), 시골(2458회), 통수(2000회), 7시(1990회), 뒤통수(1329회) 등이 많이 언급됐다. 지방혐오 표현 상위 10개 중에 지역 전체를 비하하는 단어인 시골을 제외하고 나머지 9개는 모두 광주나 전라도를 모욕하는 단어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국가 자원을 경부축으로 배분하면서 전라도에 대한 혐오적 인식을 확대했고 그 망령은 아직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다. 이는 언어 네트워크 분석(SNA)을 통해 증명됐다. 혐오표현이 담긴 댓글 문장에서 함께 언급된 단어는 무엇이고, 이런 단어들이 어떤 상관관계를 맺는지 분석한 것이다. 지방혐오는 해당 지역의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사고와 트라우마를 매개로 기생하며 그 위세를 확장했다.

광주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은 5·18민주화운동과 직결됐다. 광주라는 키워드와 가장 맞닿아 있는 혐오표현은 폭동으로, 광주와 폭동은 2202회나 함께 사용됐다. 폭동은 민주(1068회), 운동(676회), 국민(550회), 유공자(398회) 등으로 연결되며 혐오를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표현은 전두환, 김대중, 북한, 정권, 빨갱이 등 시대의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단어들로 퍼져 나갔다.

최근 코로나19 때는 대구로 대표되는 지방도시를 타깃으로 삼으며 코로나 확산이 지역민의 책임이라도 되는 양 몰아갔다.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쏟아질 때는 혐오 표현보다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를 통해 명확히 구분되는 지방혐오의 양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언어 네트워크 분석(SNA)은 점의 크기가 클수록 단어가 자주 등장했고, 연결된 선이 굵을수록 함께 언급된 횟수가 많다는 뜻이다. 광주는 폭동을 중점으로 민주, 운동, 유공자 등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팩트 따위는 상관없다”

여러 차례에 걸친 시리즈가 보도되면서 포털사이트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지방혐오에 공감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여전히 ‘전라도가 전라도 한 걸 뭐라하는 데 뭐가 문제냐’ ‘강력범의 80%는 전라도에서 일어난다’는 식의 댓글도 자주 눈에 띄었다. 취재진은 혐오적 인식을 ‘팩트’로 정면반박했다. 16개 시도의 인구대비 사건사고 발생현황, 살인·강도·강간·강제추행·방화 등 강력 범죄 데이터를 들여다봤다.

당연한 결과지만 특정도시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경향은 발견할 수 없었고, 도시의 인구 밀집도와 비례하는 수준이었다. 2019년 기준 인구 1000명당 범죄 발생 건수의 경우 댓글에서 자주 언급됐던 전라남도(28.2건)와 전라북도(26.5건)는 오히려 전국 평균보다 범죄 발생 건수가 적었다. 광주는 30.4건으로 전국 평균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고 서울(31.8건), 부산(33.1건), 제주(38.9건) 등 대도시이거나 다른 지역으로부터 인구 유입이 많은 지역이 비교적 범죄 발생 건수가 많았다.

경상도민은 불 같은 성미를 지녔고, 전라도민은 뒤통수를 잘 친다는 식의 편견 역시 혈액형이나 별자리 따위로 알아보는 성격만큼이나 근거가 없다. 출신 지역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행위는 광복 이후 일부 정치세력이 기득권 강화를 위해 허구로 만들어내고 주입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팩트가 아닌,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지방혐오의 대를 끊어낼 때

지방소멸의 시대다. 제2의 도시를 자처했던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부산을 빠져나간 청년 인구만 해도 10만 명이 넘고, 지난해 매출액 기준 전국 100대 기업에 드는 부산 기업은 단 1곳도 없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방은 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동안 언론은 국토불균형 문제를 ‘인프라’에 중점을 두고 풀어냈다. 공항, 철도, 항만, 산업·연구단지, 개발특구, 공공기관과 같은 인프라를 지방에 공정하게 배분해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중층적인 지방혐오 문제를 풀어내지 않고는 지방소멸도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이나 기관, 청년인재 등을 지방으로 떠밀듯 내보낸다 하더라도, 지방을 대하는 인식이 비뚤어져 있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기업은 지자체에서 지원금 빼먹을 궁리나 하다 유턴할 것이며, 사람들 역시 지방을 원망하고 서울을 그리워하다 되돌아가게 된다. 서울에 인재와 자본, 사회적 인프라, 문화시설 등이 집중되는 게 당연하고, 지방과 지역민은 수도권에 편입하지 못한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은 갈수록 고착화 돼 간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뒀다던 ‘이건희 기증관’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부산일보>는 △포털 사이트 뉴스 빅데이터 분석 △일상에서 횡행하는 지역 차별 발언 △부산·서울시민 600명 대상의 인식 설문조사 △외면받는 사투리의 실태 △‘지잡대’를 향한 혐오와 차별 △지역민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세태 등 6차례에 걸쳐 시리즈 기획보도를 실시했다.

취재를 하면서 비수도권 도시들의 개성을 모조리 박탈하고 ‘시골’이나 ‘촌’으로 내려다보는 서울 중심적 시각, ‘밈’(온라인상에서 공유되는 유행어, 사진, 영상)으로 전락한 지방을 향한 조리돌림, 한낱 놀림거리가 돼 버린 사투리, 지역민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세태 등 지방혐오는 새로운 형태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법과 제도의 테두리에서 지방혐오를 무작정 규제하고 막아내기는 어려운 실정이지만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청소년과 청년은 물론이고 중장년층들에까지 온라인은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니라 일상이자 현실이다. 온라인에서 지방혐오 표현을 자주 접할수록 혐오에 대한 반작용은 무뎌진다. 끝내는 주위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혐오를 휘두르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웃자고 던진 농담에 악의가 어디있겠느냐며 지방혐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혐오와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이 모욕을 느낀다면 이는 명백한 혐오다. 취재진이 만난 지역민들은 다양한 경로로 크고 작은 모욕감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지방소멸이 시대적 화두다. 하지만 지방에 대한 혐오적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지방혐오의 대를 끊어야 한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에, 농담을 던지기 전에 한 번쯤 멈춰서 혐오인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지방혐오에도 ‘멈춤’이 필요하다.



 ※ 5·18기념재단 소식지 <주먹밥> 59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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