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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2번 게시글
(논평)2020.5.18. mbc기자의 5.18민중항쟁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와의 인터뷰
글쓴이 : 박철민    작성일 : 2020-06-18     조회 : 259
5.18광주학살의 책임은 당시 전남북계엄사령관 윤흥정중장에게 있었다. 1980년5월21일 오후1시 전남도청 집단발포명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하고 관련이 없다. 5.18광주학살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는 "남의 부대에서 어떻게 지휘를 할 수 있는가? " 라고 말했다. 12.12군사반란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하나회 군인들이 주도했다.자위권발동에 의한 집단발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공수부대의 작전지시는 정호용특전사령관과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했다.자위권차원을 넘은 공수부대의 m-16 조준경사격과 무차별 비무장 민간인에게 사격, 헬기기총사 역시 전남북계엄사령관이 지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지휘계통상 모든 작전은 상부의 지시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5.18광주학살은 계획이 짜진 작전으로 12.12군사반란을 주도하고 군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의 하나회는 무엇이 두려워서 광주시민의 주검을 축소하고 은폐하고, 북한도 미국도 일본도 광주에서의 북한군개입설이 없다고 하는데 왜 억지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특히 광주교도소의 3공수여단의 민간인집단학살 후 가매장, 주남마을의 11공수여단의 민간인집단학살 후 가매장을 한 후 왜 1980년 6월초순에 다시 광주에 내려와 가매장시신을 발굴하였는가 의심스럽다. 민간인 사망자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려 했을수 도 있다. 그러나 절대 인도하지 않았다.남의 부대에서 어떻게 지휘를 하느냐는 물음에 대답은 1980년5월22일 전남북계엄사령관이 윤흥정중장에서 소준열소장으로 교체된 이후 1980년5월24일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와 11공수여단의 오인사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왜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는지는 이제 알 수 있다. 문제는 전교사와 공수여단의 통신채널이 달랐기 때문이다. 실수에 의한 사고는 있을 수 없다. 전교사의 작전지시대로 움직였다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특전사 작전참모의 실수인 것이다. 전교사의 매복상황을 몰랐던 것이다. 왜 5.18광주학살은 12.12군사반란을 주도한 하나회 군인들의 정권찬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더 큰 문제는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것을 알고 사전에 사망자처리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둘 정도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짓말을 계속하셔도 된다. 죽은자는 말을 못한다. 그러나 흔적을 남기고, 이것을 보고, 들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때문에 진실은 밝혀지는 것이다. 완전범죄는 없다. 행불자와 사망자의 유가족은 사고접수를 했다. 난리통에 보상을 받기위하여 허위로 신고하는 사람은 없다. 즉 최초 행불신청접수자는 448명이고 광주의 넝마주의는 많았다.광주일원에서의 민간인 사망자는 165명이었고, 전남일원에서는 1980년5월22일 육군참모차장 황영시과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작전지시를 내려서 전남일원에서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수많은 사망자처리를 위하여 군시체처리반은 사체소각과 암매장을 하였고, 언론보도에는 민간인 사망자의 수를 축소보도하여 광주시민과 전 국민을 기망하였다. 광주학살계획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하여 광주시민을 교란시키려는 독침사건과 선무활동, 전남 도청 민원실 지하실의 다이나마이트 뇌관분리와 수류탄 뇌관분리, 칼빈 공이를 전교사 문관을 시켜 분리시켰고, 상무충정작전을 소준열 전교사령관과 20사단 박준병이 지휘하여 20사단 의 60연대,61연대,62연대, 3,7,11공수특공조,무장헬기를 동원하여 광주의 소요사태를 진압하였다. 소준열 전교사사령관과 20사단장 박준병은 광주진압작전 성공에 대한 환희에 찬 미소로 전남도청에 방문한 당시 노영복 국방장관과 군수뇌부를 환영했다. 1980년 9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육군대장진급을 하였고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 후에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차라리 서열상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대통령이 되어야하지만 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으로 추대되고 경호실장에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고, 광주시민도 몰랐다. 진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는 것은 무모한 행위이다. 아무도 진실을 모를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진실은 밝혀진다. 누군가 오월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전두환 신군부 하나회의 광주학살을 알고 있다. 법과 역사의 심판보다도 더 무서운 주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전두환과 노태우, 정호용, 최세창, 신우식, 최웅, 박준병, 소준열, 황영시, 허삼수, 허화평, 이학봉, 홍성률, 최예섭, 장세동은 알아야한다.1980년 5월21일 오후1시 전남도청 시계탑 앞 금남로의 비무장 시민들을 향하여 11공수여단에게 집단발포를 명령한자는 1을 좋아하는 신군부 하나회 수장 전두환이 좋아하는 수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망자의 행방은 특전사 작전참모만이 아는 내용일 것이다. 자위권발동은 없었다. 정권찬탈을 위한 광주학살계획만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광주시민과 국민은 40년동안 진실과 거짓과의 싸움에 혼란을 겪고 있다. 모든 국민은 왜 광주학살계획이 이루졌는지 모른다. 그것은 대통령이되려고 하는 사람과 그 추종자들이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세상은 이제 끝이날 것이다. 이제 본인도 이 추악한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정말 구역질나서 못살겠다. 전두환과 그 추종자들이 과연 진실을 밝힐지는 의문이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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