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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40주년 기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
글쓴이 : 박철민    작성일 : 2020-05-25     조회 : 333
안녕하십니까? 박철민입니다.오늘은 5.18 민중항쟁의 하일라이트인 민간인 사망자의 이야기입니다.먼저 5.18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님을 찾아뵈려고 하는데 도대체 연락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 5.18 민중항쟁의 이야기는 개인의 소유물도 아니며, 모든 국민이 알아야할 권리인 것입니다. 제가 국민의당 대변인은 아닙니다. 저의 생각입니다.간혹 저도 모르게 이성을 잃어버리고 1980년 5.18 정보, 대공경찰분들과의 5.18 자료수집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쾌하고 힘이 듭니다. 안겪어 본 사람은 말을 하지 마세요. 이분들은 정말 날라다닙니다. 5.18의 경험이 있으니까? 자신이 살자리, 죽을자리를 민감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시더라구요. 아무튼 good idea입니다. 5.18 민간인 사망자의 공식적인 집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1980년 당시 정부집계와 현재 5.18기념재단의 집계는 차이가 있습니다.1980년 5월18일-5월 27일, 5.18 민중항쟁 기간에 광주민간인 사망자는 당시 기준 즉 정부의 집계는 민간인 사망자 144명, 군인22명, 경찰4명입니다. 그리고 현재 5.18기념재단의 집계는 민간인 사망자 165명, 군인23명, 경찰4명으로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를 통하여 군인과 경찰의 사망자는 별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인 사망자는 1980년 5.27이후 현재까지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자료:5.18기념재단 통계)본인이 오늘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5.18 민간인 사망자가 왜 이리도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저희 대학교수님 중에서 공부잘하는 학생은 문제제기를 잘하는 하는 학생이라고 하시면서 서울대학교에서는 문제제기를 잘하는 학생을 공부잘하는 학생이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은 고등학교때 미술공부를 했습니다. 광주의 아픈 기억을 생각하면서 이곳을 탈출해야한다는 생각에 19살에 광주를 탈출하여 경기도 의왕시에서 즐거운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정말 이런 좋은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대학시절 학생운동 안해봤지만 혹자는 저보고 가라 총학생회장이라고 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한편 5.18민중항쟁 40주년이 되어도 5.18 민간인 사망자에 대하여 아무도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학의 전문가가 모인 상하탑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도 문제제기를 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그럼 누가 해야하는 것인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5.18 민간인 사망자는 광주,전남시도민과 넝마주의으로 총집계 해야합니다.5.18 민간인 사망자의 총집계 기준은 2020년 현재 기준165명+ 1980년 5.18행불신청자를 기준으로 448명, +넝마주의 사망자 (추정) 200명(고 아놀드 피터슨 목사), 500명(본인 의견), 800명(박남선 저서:오월그날 )으로 잡고 싶습니다. 정리하자면 813명 (고 아놀드 피터슨 목사),1113명(본인의견) , 1413명 (박남선 저서:오월그날) 으로 이건 추정치입니다. 본인은 5.18 영화자료수집과정 중 넝마주의 사망자의 의문을 가지고 광주 전지역을 돌면서 광주지역 동별로 넝마주의가 있다는 것을 동별 주민들에게 들었습니다. 문제는 이 분들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이나, 경찰기관이 있을 텐데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박정희정부 시절 넝마주의를 자활근로대로 편성하여 관리하였다는 행정기록등이 있습니다.그러나 행정기관(5.18민중항쟁 당시 기준 광주시, 서구, 동구, 북구)이나 경찰기관(5.18민중항쟁 당시 기준 전남지방경찰국 대공과, 서부경찰서 대공과, 광주경찰서대공과)에 정보공개를 요청하지는 않았습니다. 5.18영화자료수집을 하면서 제가 왜 5.18 민간인 사망자를 조사해야하는지 반문 할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5.18때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죽인 것 만을 보았지, 내가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시체를 소각하고, 암매장한 당사자가 아니잖아!""난 죄가 없어. 나도 5.18피해자가 아닌가? 모르지 5.18트라우마에 걸려있으면서 아닌 척 하는지도......"반면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기독교병원의 고 아놀드 피터슨 목사님의 기준으로 5.18 민간인 사망자 총집계를 하면 832명, 박남선 시민군 상황실장님이 쓰신 저서 오월그날 에서는1400명 정도가 거론 됩니다. 고 윤영규선생님이 이야기 하신 넝마주의 36인조 "우리도 애국 한 번 합시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정부의 5.18 민간인 사망자 집계는 144명 이후 5.18기념재단의 민간인 사망자 집계는 165명입니다. 5.18영화자료수집 이전부터 광주시민분들은 당시 넝마주의가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당시 양동시장, 대인시장, 광주지역 자원재활용센터(고물상)분들은 5.18 민중항쟁이 끝난 이후 넝마주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정말 불쌍한 분들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6.25 전쟁고아 및 엄마, 아빠도 모르는 사생아, 자기가 좋아서 자원한 소수의 넝마주의를 빼고는 어느 누구도 관심도 없는 무호적자 5.18민중항쟁 당시 죽어도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이 없는 분들인 것입니다.그리고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지역 경찰 중 정보,대공경찰을 제외하고 소수 일반경찰은 당시 넝마주의는 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찰에서 당시 대공과의 현 전남보안수사대,광주보안수사대, 그리고 당시 505보안대 -610기무부대- 현 안보지원대,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안기부 광주지부- 현 국가정보원 광주지부입니다. 5.18민중항쟁 당시 정보과 경찰은 1980년 5.18부터 5.21까지 시위대의 동향을 파악하고, 5.21이후에는 시민군의 동향을 감시 보고한 분들입니다. 또한 당시 대공과분들은 기록이 별로 없는데 505보안대에서 5.17일 예비검속시 동원되고 이후에는 하던 업무를 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간첩이 혹시나 있을까봐 시위대와 시민군을 예의 주시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1980년 5월 24일 남파간첩 이창용은 광주에 잠입하려다 광주시 외곽의 봉쇄와 경계를 뚫지 못하고 서울역에서 서울시민의 신고로 체포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는 이창용이 광주에 잠입하였다고 언론보도를 하였습니다.(자료:1980년 5월 24일 신문)도대체 외국인의 광주민간인 사망자의 말이 맞는지, 광주시민의 말이 맞는지, 당시 정부집계가 맞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80.5.18민중항쟁 당시 일반경찰이셨던 분은 현재 70대 초반이신데 그 분이 하시던 말입니다."내가 당시 넝마주의에 대해서 잘알아. 5.18때 넝마주의는 다 죽었네." " 전두환이가 다 청소했어." 그래서 저도 기분이 이상하지만 지금까지 전직경찰의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흥분되었습니다. 저는 고마움의 뜻으로 그분이 좋아하시는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드리고 나중에 술 한잔 대접하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5.18자료수집 중 20년동안 이런 전직경찰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정부시절부터 국가공안기관과 함께 5.18자료수집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당시 5.18 민간인 사망자가 1400명(5.18 민간인 사망자165명+1980년 5.18행불신청자 448명+넝마주의 사망자 787명(추정))정도 추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5.18 민간인 사망자 총집계는 현재 1113명 추정이며, 본인의 의견이지만 연구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2020년 5.18의 새로운 자료와 증언을 비교검증하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넝마주의 사망자는 행정기관과 경찰기관을 통하여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5.18 민간인 사망자 중 넝마주의 사망자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은 지만원 박사가 이야기 하는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일까요.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시로보낸 당시 홍성률 1군 보안부대장의 편의대일까요. 미국과 일본은 600명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오지 않았고, 북한 김일성주석도 보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 관련하여 이 부분은 제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언제 만날지는 모르지만 합법적으로 공식적으로 만나면 확인해서 공개하겠습니다. 본인도 정말 궁금합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정말 광주에 북한군 600명 보냈냐"라고 비공개로 물어보겠습니다. 본인이 이런 사안을 공식적으로 통보하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체면도 생각해서 단 둘이서 비공개로 쇼부를 보겠습니다. 특전사 소속 편의대는 특전사 작전처장 장세동이 5.18민중항쟁이 일어나기전 1주일 전에 도착하였고 이후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월 18일 이전부터 광주 제1전투비행단 내에서 대기 중이었던 편의대의 인원은 목격자 맟 자료에 의하면 40명에서 50명으로 추정됩니다. 확실한 인원은 제가 당시 담당자도 아닌데 어찌 알겠습니까? 추정치는 목격자분들의 증언을 추정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1980년 5월19일부터 21일의 활동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거의 성공적인 5.18광주민간인학살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입니다. 거기에 505보안대의 시민선동과 전라남도경찰국 정보과는 시위대의 정보수집을 했으며, 대공과의 활동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후 1980년 5월21일 오후1시 전남도청방송실에서는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11공수는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서 집단발포를 하였고, 오후1시32분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자료:나의갑 전남매일 기자 1980.5.18-5.27 메모 수첩)누가 이 분들이 5.18광주민간인학살에 동원될지 알았겠습니까? 신도 모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당시 정보과 및 대공과 분들은 전두환 신군부의 각본대로 움직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2020년 현재까지 광주 ,전남의 정보, 보안을 담당하면서 단 한 명의 불순분자, 간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무를 수행했고, 1989년 노태우정권시절 조선대학교 고 이철규 제4수원지 변사체 사건을 빼고는 아주 열심히 직무수행을 잘했습니다. 기타 사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이분들의 직무수행은 온화해졌습니다. 과거 전기고문 및 가혹행위보다는 법과 원칙에 의하여 국가보안법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검찰과 정치군인, 정치 국정원이 있는것은 알았지만 정치경찰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국가공무원이 정치에 관혀하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5.18민중항쟁 당시 넝마주의 사망자는 있습니다. 문제는 당시 전남합동수사단과 505보안대, 광주시민분들은 알면서도 관심을 적게 가진 것 뿐입니다.본인이 5.18 민간인 사망자를 부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모든 광주시민과 모든 국민들이 궁금해할 사항이라고 생각한 것 뿐입니다. 과거 5.18영화자료수집 중 넝마주의 사망자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임낙평님이근거를 제시하라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목격자료:김재균 광주광역시 북구청장님과 함께 5.18 민중항쟁기념행사때 금남로 4가 지하도를 내려가는 것을 목격했음, 연도와 일시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김재균 광주광역시 북구청장 재임시절입니다.) 그러나 현재 5.18민중항쟁 민간인 사망자 집계도 제대로 되지 못하는 상황이며, 전두환 신군부는 이미 모든 광주 민간인 사망자의 실체를 알면서 모로쇠로 일관하고 당시 광주진압 신군부의 하나회 군인들은 5.18민중항쟁에 대하여 이미 끝난 일이라고 자부심을 가지며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특히 대한민국의 훌륭한 경찰분들은 범죄 단서만 제공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공무원은 건국이후부터 6.25를 거쳐 5.18민중항쟁, 87년 민주항쟁이후로 상명하복의 정신을 가지고 공무를 수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희생하신분들의 꿈이기도 할 것입니다.이젠 저도 나이가 들어서 염라대왕님에게 잘 보이려고 공부 좀 하고 있습니다. 간혹 이런 생각도 합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염라대왕님 단지 저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 일뿐입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님같은 분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습니다.""저는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증거인멸을 위하여 시신을 소각하고 신군부의 전두환을 지원한 카터 전 미국대통령처럼 살고싶지 않습니다. 제가 왜 죄없는 무고한 광주시민, 대한민국 국민을 이유없이 죽이겠습니까? 저는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전용호 소설가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과, 5.18시민군기동타격대 고 김현채 아재에게 좋은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누가 태어나서 장가도, 시집도 못가고 부모님에게 불효하면서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염라대왕님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라리 저에게 저승사자를 책임지는 총책임을 맡겨 주십시요.""그럼, 죽어서도 이승에서 하지 못한 일을 저승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5.18민중항쟁 당시 무고한 사람을 죽였던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불러서 저승에서라도 조사하겠습니다."오늘은 막걸리 두 병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쌓인 것들이 터져서 집에서 한 바탕했는데 5.18 영화자료수집 중 광주보안수사대의 민간정보원을 했던 이웃사람이 저를 자극해서 평소하던대로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드신분들은 대부분은 사고의식이 변화지 않습니다. 광주북부경찰서 보안과 방문시 보안수사대에 근무했던 직원으로 보이는 경찰로부터 "한 번 국가보안법으로 보안수사대의 감시 받으면 빨갱이지. 뭐야¡"라는 말을 들었을때가 기억납니다. 박남선 시민군 상황실장님의 저서 오월그날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야. 한 번 삥바리는 영원한 삥바리야! "꼭 영화의 한장면 같은 명대사처럼 들렸습니다. 본인은 신고정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번 광주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쓴 이후 결심했습니다.차라리, 이럴거면, 정말 민주적인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분에게 "정말 억을합니다. 저의 한을 풀어 주십시요. 저는 국가보안법이 먼지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법조문보고, 법원판결문보고, 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는지 연혁을 살펴보고, 과거 국가보안법관련 피해자를 살펴보면서 이 법의 장점과 단점을 공부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동안 국가보안법 감시대상이 아니라 5.18영화자료수집 중 광주에 단 한 명이 광주, 전남을 막 쑤시고 돌아다니니까? "저놈 이상하다. 그냥 놔두면 큰일나겠다." 하면서 이 분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엮어서 본인을 힘들게 한 것입니다. 이분들의 죄명은 건당으로 하면 문재인대통령님도 할말을 잃고 우황청심원을 먹으시면서 옆에 있는 강기정 정무수석을 불러서 "자네도 힘들테니 먹어 두게" 하셨을 것입니다.대한민국에 정보과, 보안수사대보다 무서운 민간정보원과 이웃사람을 보면서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구나,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의 상황을 비교하여 생각했습니다. "아니, 이런 아무리 막가는 인생이라도 이명박, 박근혜정권에서 쫑나게 생겼네"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365일 24시간 민간정보원을 이용한 감시에 사람의 신경을 건들고 전남보안수사대와 광주보안수사대에게 돈을 받은 민간정보원은 동네주민과 술잔치하고, 광주북부경찰서 정보과는 한 수 더 떠서 자신들은 죄가 없는 것처럼 하는 행동을 보면서 한 숨 밖에 안나왔습니다.혹자는 신고하면 된다고 하지만 국가보안법관련 불법행위 및 무고 신고는 1980년 5.18 민중항쟁 이후로 제대로 광주,전남지역 검찰과 경찰, 군검찰에서 수사를 제대로하여 처벌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이 글을 보시고 명예훼손죄로 신고하실지도 모르지만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기광서교수님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파일을 훔친 1980년 505보안대 사고당시 610기무부대에서는 기교수님이 북한학전공이어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인지하여 행동을 주시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그것은 넌센스입니다.과거 학생운동전력과 당시 이명박정권에서의 610기무부대의 미친광끼 즉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면서 자신들의 무소부리의 권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결국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기광서교수님의 신고는 접수되어 처리되었지만 미온적이었습니다. 기교수님의 사건이 있기전 본인은 1980년 5.18민중항쟁 때 505보안대 방문당시 610기무부대를 2009년도 여름에 허리디스크가 걸려서 아픔을 이기기면서 방문을 했습니다. 5.18기념재단의 자유게시판의 글에도 나와 있듯이 당시 임홍근 준위는 610기무부대 본관 1층 입구 응접실에서 커피 한 잔을 주면서 이것 ,저것을 물어 보았습니다.그러던중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5.18영화를 안만들면 안됩니까?"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임준위에게 "저에게 직업을 주세요. 저는 10짜리 하나까지 5.18영화를 만드는데 투자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료: 방문일자는 광주광역시 북구 풍향동 탑정형외과 진료 전 일주일)그리고 임준위는 저를 당시 610기무부대 부사관인 김중사라는 사람에게 데려갔습니다. 1층 응접실 옆 방에는 150평정도되는 공간이었는데 여러개의 긴탁자에는 610기무부대 군인들이 한 150명정도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것을 보았는데, 임준위는 김중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얼굴 잘 기억해둬"하시면서 저를 610기무부대 현관 입구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이후 610기무부대에 면담은 거절되었습니다. 그리고 중흥3동 거주지 주변에서 저녁무렵 스포츠머리의 김중사가 검정승용차를 타고 감시한 것을 목격 했습니다.저희 어머니 덕분에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보면 잘 잊어먹지 않기때문에 "어,김중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당시 저보다도 5.18을 많이 아는 분들이나, 조선대 노정기교수님이나,전남대 김희송 5.18연구교수 (당시 전남대학교 박사과정)님을 감시하지 왜 저같은 사람을 감시했는지는 저도 직접 물어보지 않아서 모릅니다.국가정보원 광주지부, 전남지방경찰청 정보과, 보안수사대, 보안사이버수사대, 광주지방경찰청 정보과, 보안수사대, 보안사이버수사대, 610기무부대, 광주북부경찰서 정보과, 민간정보원들이 이명박, 박근혜정부시절 왜 저와 가족을 철통경계를 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신고정신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비오신부님이 저 어릴때 유치원 원장신부님이셨는데 조비오신부님 면담 당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1981년 프란치스카유치원은 돈이 없으면 못오는데 하시면서, 주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함평농고 출신이신데 우리아들은 다른집 아이들보다 잘가르치려고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조비오신부님은 또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5.18 당시 광주진압 군인들이 지금 몇 살쯤 됐지. " 그러시면서 5.18 광주진압 군인들의 문제도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말은 못하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아니, 저는 5.18영화만들려고 신부님께 면담하려고 왔는데, 5.18영화를 만들지 마라고 하시면 저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답이 없더라구요." 면담 이후 조선대학교 고 이철규 변사체 사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전남보안수사대 부근의 소화자매원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밖에 나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5.18민중항쟁 당시 민간인 사망자는 2020년 현재 165명이며, 5.18 행불신청자는 448명입니다. 본인도 20년을 직간접적으로 살펴보았지만 5.18 민간인사망자 중 넝마주의 사망자는 바로 가까운 곳 5.18 민중항쟁 당시 전남지방경찰국 정보과와 대공과, 서부서, 광주서 정보과, 대공과 경찰분들을 전수조사하면 넝마주의 사망자의 전모가 나올 것입니다.20년동안 말도 안되는 국가보안법으로 엮어져서 힘들었지만, 가장 본인을 힘들게 한 것은 5.18대공경찰 현 전남보안수사대(2007년 광주지방경찰청 개청 후 전남보안수사대 1대는 전남지방경찰청이 있는 목포로 2대는 현재 광주지방경찰청 보안과 소속 광주보안수사대로 조직이동을 했음) 와 5.18자료수집을 하러 다녔다는 것과 조선대학교 고 이철규 변사체사건 관련자들에게 불법감시를 당했다는 것이 정말 슬픈 현실입니다. 전남보안사이버수사대 (2007년 개청 전) 와 광주보안사이버수사대(2007년 개청 후) 역시 본인을 힘들게 했습니다. 저장매체손괴 및 개인정보유출, 패킷감청 등 이후 알았던 일이지만 광주북부경찰서 정보과에서도 감시를 했다는 것입니다. 생계곤란의 피해도 입었습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은 아주 보기 좋게 망가졌습니다. 이 사안은 본인이 해결하겠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나의 한 마디 "요즘 거미, 바퀴벌레도 못죽이겠어요."전두환이 광주에서 재판받는날 광주지방경찰청 정보과 4명이 조선대 평생교육원 부근 벤취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마시고 웃고 가셨습니다. 최관호 광주지방경찰청장님나는 그분들이 조선대교수님인지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니었습니다. " 나하고 전두환하고 뭔, 관계여¡ 내가 언제 전두환이 죽인다고 했어. 경찰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한 중앙정보부 김재규부장처럼 애국자가 나올 수도 있겠지. 총이 있으니까? "광주지방경찰청장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오던지 말던지 정보과직원 보내지 마세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말로에 고생 안하실려면 직원 단속 좀 하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안걸렸는데, 5.18트라우마에 걸린 것 같아요. 왜 국가정보원 광주지부이야기는 안나오는지 하실 것 같아서 추가로 보충글을 쓰자면 국가정보원 광주지부 사이버팀에서 그동안 패킷감청도 모르게 했고, 전남보안수사대, 광주보안수사대와 정보공유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정보원 광주지부 면담을 가서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광주보안수사대에 허락을 받고 오세요" 그래서 저는"저를 국가보인법으로 조사해주세요." 라고 준비해간 서류를 경비에게 건네주고 왔습니다. 기분이 좋을 일이 없지요. 집으로 가는데 경찰 페트롤카가 국가정보원 광주지부 부근을 순찰하는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지사항1.오타 및 미흡한 부분에 대하여 수정하겠습니다. 2.민간인사망자 관련 문의나 질문은 비공개하겠습니다. 3.모든 언론과 일체의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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