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cessity and Meanings of UDPMA Designation
During Belgian colonization in Burundi, three ethnic groups were designated as major components of its population. Burundi is an independent country from 1stJuly 1962. But the independence hero was assassinated. Since 1965 and till now, the Burundi government was characterized by political crises based on ethnic division. In 1993, democracy was introduced in Burundi. The hero of democracy was assassinated in the same year by unhappy military authorities who did not want the political change. Rebellions were created by some politicians and youth who were escaped from this democracy crisis. Many negotiations were held till rebellion movement had come back to Burundi. A short transition period between the previous government (governed by the Tutsi ethnic group) and the new government (politicians from the rebellion: majority of the Hutu ethnic group) followed by elections which were held in 2005. Elected authorities have ruled Burundi from 2005. Many coups d’états had staged by the opposite side. Since 2015 with mandate issues about Third Mandate of the Deceased President Nkurunziza, human Rights activists were against his mandate because it was not recognised by the constitution; they had asked an intervention of international patners to stop this mandate. Youth and opposite parties had demonstrated on the streets and some were persecuted while others were killed and many having taken refuge.
From 1965 till 1993, military authorities from the Tutsi ethnic group had governed Burundi: a great deal of authoritarianism and militarism reigned over the country. From 2005, the Hutu ethnic authorities have been governing and they are reporting the same mistakes made by their predecessors. uman rights defenders remain unprotected in this countr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gainst human violence were chased on its territory. Lawyers are corrupted. To live and work in Burundi as a human rights defender, you must stay without reactions on human rights violations. Impunity is openly observed. Activists cannot express their opinions and are also victims of fabricated charges; they are wrongfully punished of their advocacy efforts.
I had visitd South Korea in September 2017 to participate in the 2017 May 18 Academy. I had discovered this country that I have never visited before - I discovered more welcoming, generous and kind people with a very enriching culture. I remember that in the restaurant a Korean man told me water was free!
I had visited cities in Korea, especially Seoul and Gwangju. But Gwangju blew me away with its human rights history. Yes, it was the city of human rights. Now, I know the history of the city of Gwangju. The citizens of Gwangju had fought in solidarity against military violence in 1980. This solidarity to fight injustice despite the oppression of government forces is very significant. The intellectuals and the peasants opposed the violence. They dared to fight despite their insufficient means against the firearms of the soldiers. Victims of this violence continued living with mental and psychological consequences because of these wild massacres of the military. As an african and burundian, I support the project that the May 18 Memorial Foundation along its overseas partner organizations launched to designate May 18 as the universal day against militarism and authoritarianism in the world. I accept this day be declared universally and let the world know well what really happened in Gwangju. I believe that this will serve the world as a great example in perusing democracy and human rights for the citizens of the world.
1965년부터 1993년까지 투치족(Tutsi) 출신의 군 당국은 부룬디를 통치했으며 이들은 엄청난 권위주의와 군사주의로 부룬디를 지배했다. 2005년부터, 후투족 당국이 통치하기 시작했고 이들 또한 전임자들과 같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인권 옹호자들은 이 나라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 가해지는 폭력에 반대하는 국제기구들이 이 나라 영토에서 쫓겨나고 있다. 변호사들은 타락했다. 부룬디에서 인권 옹호자로서 살고 일하기 위해서는 인권 침해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아야 한다. 면책은 공공연히 벌어진다. 운동가들은 그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 없고 또한 조작된 죄명으로 희생자가 된다. 운동가들은 활동의 대가로 부당하게 처벌을 받는다.
2017년 9월 5·18 아카데미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전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발견하게 되었다.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한 식당에서 어느 한국인 남성이 나에게 물은 공짜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한국의 도시, 특별히 서울과 광주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광주에서의 인권의 역사를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광주는 인권의 도시였다. 이제 나는 광주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은 군사 폭력에 대항해 연대하여 투쟁을 벌였다. 정부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싸우기 위한 이러한 연대와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지식인들과 시민들은 국가 폭력에 저항했다. 그들은 군인들의 화력과 총기에 대항할 수단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폭력의 피해자들은 이러한 야수와 같은 광란의 군대 학살로 인한 정신적, 심리적 아픔을 안고서 계속 살아왔다. 아프리카인이자 부룬디 국민으로서 나는 해외 협력 단체와 함께 5·18기념재단이 5월 18일을 세계 군사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세계인의 날로 지정하기 위기 위한 사업을 지지한다. 나는 이 날이 세계에 선포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광주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계에 잘 알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이를 통해 세계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하는데 있어 훌륭한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From 1965 till 1993, military authorities from the Tutsi ethnic group had governed Burundi: a great deal of authoritarianism and militarism reigned over the country. From 2005, the Hutu ethnic authorities have been governing and they are reporting the same mistakes made by their predecessors. uman rights defenders remain unprotected in this countr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gainst human violence were chased on its territory. Lawyers are corrupted. To live and work in Burundi as a human rights defender, you must stay without reactions on human rights violations. Impunity is openly observed. Activists cannot express their opinions and are also victims of fabricated charges; they are wrongfully punished of their advocacy efforts.
I had visitd South Korea in September 2017 to participate in the 2017 May 18 Academy. I had discovered this country that I have never visited before - I discovered more welcoming, generous and kind people with a very enriching culture. I remember that in the restaurant a Korean man told me water was free!
I had visited cities in Korea, especially Seoul and Gwangju. But Gwangju blew me away with its human rights history. Yes, it was the city of human rights. Now, I know the history of the city of Gwangju. The citizens of Gwangju had fought in solidarity against military violence in 1980. This solidarity to fight injustice despite the oppression of government forces is very significant. The intellectuals and the peasants opposed the violence. They dared to fight despite their insufficient means against the firearms of the soldiers. Victims of this violence continued living with mental and psychological consequences because of these wild massacres of the military. As an african and burundian, I support the project that the May 18 Memorial Foundation along its overseas partner organizations launched to designate May 18 as the universal day against militarism and authoritarianism in the world. I accept this day be declared universally and let the world know well what really happened in Gwangju. I believe that this will serve the world as a great example in perusing democracy and human rights for the citizens of the world.
UDPMA 제정의 필요성 및 의미
부룬디의 정치적 역사: 과거 벨기에에 의한 부룬디 식민 통치 기간 동안 3개 인종 집단이 인구의 주요 구성 요소로 지정되었다. 부룬디는 1962년 7월 1일자로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독립 영웅은 암살당했다. 1965년부터 지금까지 브룬디 정치는 민족 분열을 기저로 한 정치적 위기로 특징지어 진다. 1993년 민주주의가 브룬디에 도입되었다. 민주주의의 영웅은 같은 해 정치적 변화에 불만을 가진 군 당국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 위기로부터 탈출한 일부 정치인들과 젊은이들은 반대세력을 구축했다. 반란 운동이 부룬디로 입성할 때까지 수 많은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전 정부(투치족 지배)와 새 정부(반란세력 정치인들: 대다수가 후투족)의 짧은 과도기 이후 2005년 선거가 뒤따랐다. 선출된 세력은 2005년부터 부룬디를 통치해왔다. 반대세력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 많은 쿠데타를 꾸몄다. 고 느쿠룬지자(Nkurunziza) 전 대통령의 3 번째 통치 권한에 대한 위임통치 문제가 제기된 2015년 이래 인권 활동가들은 헌법에 의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통치 권한에 반대했다. 활동가들은 이러한 통치 권한을 중단하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자들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젊은이들과 야당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고 일부는 기소 당했고 다른 이들은 살해되고 더 많은 이들은 망명을 선택 했다.1965년부터 1993년까지 투치족(Tutsi) 출신의 군 당국은 부룬디를 통치했으며 이들은 엄청난 권위주의와 군사주의로 부룬디를 지배했다. 2005년부터, 후투족 당국이 통치하기 시작했고 이들 또한 전임자들과 같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인권 옹호자들은 이 나라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 가해지는 폭력에 반대하는 국제기구들이 이 나라 영토에서 쫓겨나고 있다. 변호사들은 타락했다. 부룬디에서 인권 옹호자로서 살고 일하기 위해서는 인권 침해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아야 한다. 면책은 공공연히 벌어진다. 운동가들은 그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 없고 또한 조작된 죄명으로 희생자가 된다. 운동가들은 활동의 대가로 부당하게 처벌을 받는다.
2017년 9월 5·18 아카데미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전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발견하게 되었다.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한 식당에서 어느 한국인 남성이 나에게 물은 공짜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한국의 도시, 특별히 서울과 광주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광주에서의 인권의 역사를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광주는 인권의 도시였다. 이제 나는 광주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은 군사 폭력에 대항해 연대하여 투쟁을 벌였다. 정부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싸우기 위한 이러한 연대와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지식인들과 시민들은 국가 폭력에 저항했다. 그들은 군인들의 화력과 총기에 대항할 수단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폭력의 피해자들은 이러한 야수와 같은 광란의 군대 학살로 인한 정신적, 심리적 아픔을 안고서 계속 살아왔다. 아프리카인이자 부룬디 국민으로서 나는 해외 협력 단체와 함께 5·18기념재단이 5월 18일을 세계 군사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세계인의 날로 지정하기 위기 위한 사업을 지지한다. 나는 이 날이 세계에 선포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광주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계에 잘 알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이를 통해 세계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하는데 있어 훌륭한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